산을 즐기자
북알프스 산장지기의 지리산 종주 산행기
“음식과 술 인심 넉넉한 한국인의 정”
한국의 산이라고 하면 일본인은 어느 산을 떠올릴까. 클라이머라면 인수봉, 제일 높은 산이라면 한라산,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소주 선전으로 일본에서도 알려진 설악산일까. 지리산은 일본에서 지명도가 낮지만 한국에서는 인기가 있는 산이다.
1993년 배낭여행을 목적으로 처음 한국을 찾았던 나는 그 일을 계기로 한국과 사랑에 빠져들었다. 급기야 당시 일하고 있던 야츠가타케(八ヶ岳) 산장을 잠시 쉬고 1998년 고려대학교에서 3개월간 한국어 어학연수를 받게 됐다. 일본으로 돌아온 후에도 한달에 한번, 5일간의 휴가가 주어지면 산장을 내려와 3박 4일 일정으로 서울을 찾고 다시 산으로 돌아오는 생활이 반복됐다. 하지만 한국의 산을 오를 기회는 없었다. 산장에서 숙박을 하며 등산하는 것은 그 무렵부터 생긴 바램이었다.
2001년 결혼 후 서울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나와 남편은 2002년 월드컵 직전인 5월 18일 다시 한국을 찾았다. 3박 4일 일정으로 지리산을 종주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한국은 일본과 달리 산장에서 스스로 식사를 준비하는 것뿐 아니라 침구가 없다. 때문에 먼저 지리산 기슭 진주시의 큰 슈퍼마켓에서 장을 본 후 중산리행 버스를 타고 전원 지대를 지나 강을 따라서 산으로 들어갔다. 주변에 민박이 많고 관광버스가 늘어선 분위기는 후지산 5합목(富士山五合目)과 비슷했다. 우리는 버스정거장부터 1시간 정도 걸어 등산로 입구 주변의 민박에 묵었다.
전날 안개가 끼어 쌀쌀한 탓에 추위를 잘 타는 나는 걱정이 됐지만 다행히 이튿날은 쾌청하게 날이 개었다. 지리산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등산객은 등산로 입구에 있는 매표소에서 입장료를 지불해야 했다.
우연히 그날은 축제를 하고 있고 불교 신자도 많이 오르고 있는 것 같았다. 등산객들의 나이는 등에 업힌 아기부터 70대까지 다양했다. 특히 가벼운 차림으로 당일등산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한국에서도 산을 오르는 것을 ‘등산’이라고 말하지만, 일본에서 말하는 ‘등산’보다 부담 없이 즐기는 주말 하이킹과 같은 뉘앙스다. 일상적인 레저의 한 일환으로 등산을 하는 것 같다. 어쨌든 한국 국민은 남녀노소 산을 좋아한다.
초여름 햇볕 속에서 가까스로 도착한 정상은 복잡했다. 여기저기에서 빙 둘러앉아 점심식사, 아니 술잔치로 한창이다. 밥과 고기, 김치, 소주를 짊어지고 올라와 노래를 부르고 춤추고 너무 즐거운 광경이다. 모두 이것을 즐거움으로 삼고 1000m가 넘는 고도를 올라오는 것 같다. 내가 한국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 힘차고 밝은 민족성에 있다. 그렇지만 진심으로 걱정될 정도로 술을 마시고 있다. 때론 작은 사고도 있겠지만, 이 습관은 없어지지 않겠지. 적어도 오늘 여기에 있는 사람들만은 무사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마음속으로 빌었다.
천왕봉부터 지리산 주능선 서쪽으로 내려와 세석산장에 도착했다. 세석산장의 숙박 요금은 5천원. 일본 엔화로는 약 5백엔(2002년 당시)이다. 취사를 해야 하고 침구가 없다고 해도 매우 싸다. 일본 민박요금과는 차이가 많다. 그 때문인지 한국 사람들은 부담 없이 산에 오르는 것 같다. 지리산에는 공영, 민영을 합해 8채의 산장이 있는데 세석산장을 비롯해서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운영하고 있는 산장은 규모가 크고 새것이다. 제복을 입은 공단 직원들이 일하고 있어 취사실, 화장실도 청결하다. 한편 민영 산장은 비교적 낡고 작은 산장이면서도 수염 난 등산가 주인이나 산을 좋아할 것 같은 젊은이가 일하고 있어 편안한 분위기였다.
산장으로부터 50m 떨어진 개울에는 간단한 싱크대가 있다. 간판에는 이 개울이 마을 주민의 수원이 되므로 오염되지 않도록 주의할 내용이 덧붙여 있었다. 너글너글한 한국인 기질을 보며 환경문제에는 무관심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 것에 놀랐다. 쓰레기는 집으로 가지고 돌아가는 것이 원칙이지만 실제로 산장에는 쓰레기통이 있었다. 수집한 쓰레기는 잔반 이외는 헬기로 내려 보내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일본 산장에서도 같은 이유로 쓰레기통을 설치한 곳이 있었던가.
이튿날 아침 일출을 보러 20분 정도 올라 촛대봉에 갔다. 지리산은 맑은 날씨가 드물어 ‘삼대가 좋은 행동을 하지 않으면 일출을 볼 수 없다’라고 하는 속담을 전날 산장에서 들었는데, 다행이 날이 맑았다.
이후 세석산장을 출발해 오후 2시쯤 벽소령산장에 도착했다. 한국에서는 산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며칠에 걸쳐 능선을 걸을 수 있는 곳은 적다. 그래도 지리산은 높고 약 40km 가까운 능선이 이어진다. 다만 남한에는 2000m를 넘는 산이 없어 수목이 시야를 가리기 때문에 전망은 일본보다 좋지 않다.
벽소령산장 취사실 앞의 경치도 근사하다. 저녁 식사를 만들고 있을 때 한 남학생이 돼지고기를 나눠줘 매우 호화로운 식사가 되었다. 한국인은 음식과 술을 나누는데 인색하지 않아 산중에서 친해진 사람들과 음식을 나누면서 식사하는 일이 많은 것 같다.
다음날에는 바위가 많은 구간을 지나 능선이 완만해지기 시작할 즈음 연하천산장에 도착했다. 이곳은 민간이 운영하는 자그맣고 아담한 분위기의 산장이다. 일본의 근대적인 산장보다 작은 산장을 좋아하는 등산객이라면 마음에 들 만하다. 이곳에서는 골짜기를 흐르는 물에 대야를 놓고 맥주를 팔고 있었다.
마지막 봉우리 노고단은 정상 일대가 철망으로 둘러싸여 출입을 막고 있었다. 미리 예약을 한 사람만 출입이 가능했다. 한국 국립공원은 자연을 쉬게 하려는 목적으로 일정 구간 수년 단위로 등산로 출입을 막는 곳이 있다. 자연휴식년제라는 발상은 매우 신선해 보였다. 일본에서는 국립공원 범위가 넓고 민간자본도 많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한국처럼 하기는 어렵겠지만 자연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의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월간 마운틴 2007년4월호 게재
북알프스 산장지기의 지리산 종주 “음식과 술 인심 넉넉한 한국인의 정”
당일 등산과 종주 등산의 차이
한일 등산문화 차이
일본 산장 이용방법
등산과 토잔(とざん)의 차이를 확인하자!